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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장 왕국건설부터 바벨론포로까지의 역사

2024년 12월 12일조회 6

제 4 장 왕국건설부터 바벨론포로까지의 역사

1. 사울의 등극에서 왕국의 분열까지

(연대 : 1052∼932 B.C. 성경 : 삼상 8∼31, 사무엘하, 왕상 1∼11장)

사울과 다윗은 이스라엘의 첫 두 왕이었다. 그들의 생애는 어느 정도 유사하다.

이 두 사람에게서 우리는 처음 성공에 슬픈 죄가 뒤 따른 것을 본다. 그러나 이점에서 유사점은 끝난다. 사울의 경우에서는 죄가 고난의 가증을 가져 오고,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핍박하게 된다. 다윗의 경우에는, 범죄 후에 진정한 슬픔이 있고, 그래서 비록 탈선의 결과가 완전히 없어지진 않았지만, 그 다음에 용서가 있다.

사울의 "영광"(당시 그렇게 불리워질 수 있었다면)은 잠깐 번쩍이다 어두움속으로 사라져 버린 유성의 영광은 "신랑이 그 방에서 나오는 때"와 같은 태양의 영광이다.

이제 솔로몬을 생각해 보자! 어떤 시인은 말하였다.

흥하고 빛나고 쇠퇴함이 매일의 주제이다.

우리가 솔로몬의 통치를 이 3단어에 따라 나눌 때, 우리는 구약 기사를 정당하게 취급하게 되고, 또 공부한 바를 잊지 않을 것이다.

흥함(Rising) - 이것이 솔로몬이 상속받은 강한 영역이다. 그는 이것을 더 강화하였다. 더욱이 그는 야웨로부터 분별력을 받았으면, 그 외에도 부와 명성을 얻었다. 그는 행정을 중앙집권화하고 강하게 조직하였다.

빛남(Shining) - 그는 두로(Tyre)의 왕 히람(Hiram)과 언약을 맺고, 그렇게 하여 얻은 건축재료를 가지고 야웨를 위해 웅장한 성전을 세우고 그것을 헌당 하였다.

이것이 그의 통치의 최고업적이었다. 이 성전에서 주님이 친히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셨으니, 이것이 성육신의 예표이었다.

쇠퇴함(Declining) - 그러나 경고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왕상9 : 6∼9), 솔로몬은 그의 많은 외국의 처첩들을 용납하여 자기를 탈선케 하였다. 예루살렘 동남쪽 범죄산(Mount of Offence) (그 정확한 산봉은 알려져 있지 않음) 위에, 왕은 이방신들을 위한 신당들을 세웠다.

그는 상업적 이유와 그의 외국처첩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그렇게 하였다. 그 처첩들은 그의 마음을 다른 신(神)들에게 빼앗기도록 하였다. 그의 혼은 더 이상 "온전하게" 야웨께 바쳐질 수가 없었다. 느헤미야 13 : 26에 근거하여 또 다른 이유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의 은혜로 이 중대한(통탄할) 죄에서 그를 치유하셨다고 믿는다.

스바(Sheba) 여왕이 솔로몬 왕정의 영광을 보았을 때, 그녀의 놀라움은 극했다.

"...스바 여왕이..를 보고 정신이 현황하였다."(왕상 10 : 5) 그러나 그의 왕국의 영광은 앞으로 다가 올 영광 곧 그리스도 왕국의 영광의 그림자에 불과하였다.

더욱이 솔로몬이 죽음으로 그 나라는 분열되어, 통일왕국은 분열왕국들이 되고 말았다.

2. 왕국분열(종족상쟁)에서 사마리아 멸망까지

(연대 : 932∼722 B.C. 성경 : 왕상 12장∼왕하 17장)

(1) 932-886 : 종족상쟁

솔로몬이 죽은 뒤 세겜(Shechem)에 모인 이스라엘의 대변인들은, 무거운 짐을 진 백성의 불평을 언급하고 무거운 멍애를 가볍게 하여 달라고 르호보암왕에게 요청했으나 르호보암왕은 소년들의 말되로 노인들의 요청을 일축함으로 불만을 품은 다수의 대변자인 에브라임족의 사람 여로보암이 10지파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르호보암은 그 남은 2지파인 유라와 베냐민 지파만을 다스리게 되었다.

(2) 886∼836 : 오므리(Omri)가

886년 오므리가 설립 직후, 한 새로운 시대가 두 왕국에 시작된다.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이 오므리의 아들 아합과 화해를 하였다.(왕상 22 : 44) 정치적, 군사적 동향이 달라진다. 유다는 이제 더 이상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수리아와 동맹하지 않게 되었으며, 유다와 이스라엘은 동맹국이 되었다. 여러번 양국의 왕들은 특히 수리야에 대항하여 같이 싸웠다(왕상 22장)

이스라엘에서 오므리 왕조의 종말은, B.C. 842년에 임하였다. 그해에 군대장관 에후가 요람을 활로 쏘아 죽였다. 유다왕 아하시야도 죽임을 당하였다. 예후의 명령에 의하여, 이세벨은 창문으로부터 던짐을 받아 죽었다. 그들이 멸망함으로 하나님의 저주가 성취되었다(왕상 21 : 17∼26, 참조 22 : 37, 38, 왕하 9 : 21∼37)

그러나 유다에선 실제적 변화가 6년 뒤 즉 B.C.836년경에 일어났다. B.C. 842∼836년 사이에는 아달랴가 최고 지배자가 되었다. 절대를 갖기 위하여, 그 여자는 다윗의 씨를 없애려고 생각하였다.

아달랴는 모든 왕의 씨를 진멸하였다. 즉 그 여자는 그렇게 하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음 절들을 읽어보라(왕하 11 : 1, 2).

(3) 836∼786 : 하사엘의 압박 요아스가 왕이 된 날, 아달랴는 죽임을 당했다. 유다에서 한 새로운 시대가, 바알 숭배의 진멸과 야웨(여호와)전의 수리와 더불어 시작이 되었다(왕하 12 : 1∼16).

그러나 이 기간에 유다와 이스라엘은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다. 양국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음으로부터 야웨를 경배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야웨는 그 백성을 벌하기 위하여 한 압박자를 일으켰다.(왕상 119 : 17, 대하 24 : 24).

그의 이름은 하사엘이며 수리아 왕으로, 이스라엘과 유다의 극악한 적이었다. 그이 진멸계획이 엘리사에게 계시되었을 때, 에리사는 울었다. 왕하 8 : 11∼13에서 하사엘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채찍이었다.

(4) 786∼736 : 매혹의 시대

유다에서는 비록 웃시야가 그의 생애의 후반기에 이름만 왕이었고 그의 아들 요담이 실제로 통치하는 군주이었다 할지라도, 이때는 웃시야 시대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여로보암 2세기가 786년에 다스리기 시작하여 거의 이 모든 기간에 통치하였다.

웃시야는 유다가 이스라엘에 예속됨을 벗어버리는 데 성공했으며, 아주 강하게 되었다.

그는 동쪽의 암몬족은 물론 서쪽의 블레셋족을 패배시켰으며, 그의 군대와 예루살렘 방어를 크게 강화하였다(대하 26 : 1∼15).

여로보암의 군사적 성공은 더 컸다. 그는 그의 영토의 범위를 크게 확대시켰으며, 수리아에 굴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메섹을 포획하였다.(왕하 14 : 28).

어떤 저자는 이 시대의 특징을 "전멸 전 영광의 최후탄"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 시대는 매혹의 시대로 이 시대에 이스라엘은 윤이 나도록 닦아진 아름다운 하나의 기구 같았으나 그 내부에서는 흰 개미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 기간은 736년 웃시야의 죽음과 함께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cf. 이사야 6 : 1).

(5) 736∼722 : 앗수르의 증대, 사마리의 멸망

우리는 736∼686년의 기간을 앗수르의 증대기라 칭한다. 그 다음기인 68+6∼636년에 우리는 외국의 통치기(정치적, 종교적으로)라는 칭호를 붙인다. 여기 "외국의"란 말은 "앗수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736∼636년의 모든 세기는 분명히 앗수르의 세기(Assyrian Century) 이다. 신 앗수르 제국은 745년경에 수립되어 612년(어떤 의미에서는 몇년 더 길다.)까지 지속되었다. 636년이후 그 쇠퇴가 아주 빨랐다.

여로보암 2세 이후 이스라엘의 왕조에 올랐던 6왕들 중, 한 왕만이 그의 아들에게 계승되었으니, 즉 므나헴으로, 그는 티글랏 필레셀에게 조공을 바쳤다.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를 암살한 베가는 앗수르 전쟁을 일으켰으며, 이 전쟁에서 베가는 아람(수리아)왕 르신에게 도움을 입었다. 유다왕 요담의 아들 아하스가 협력을 거부했을 때, 아하스는 이 두 공모자들(베가와 르신)로 말미암아 공격을 받았다.

그들의 위협은 다윗의 씨를 진멸하고 그들 자신이 선택한 왕 "타벨의 아들"(the son of Tabeel)을 세우겠다는 것이었다.

이 때는 이사야와 미가 시대이었다. 만일 이 계획이 성공한다면 창 3 : 15의 약속은 어떻게 되며 특히 삼하 7 : 12∼13의 약속은 어찌될 것인가? 모든 것이 위태로웠다.

야웨를 신뢰하고 하나님의 보호의 표적을 구하도록 훈계하기 위하여 이사야는, 아하스에게 보냄을 받았다

그러나 아하스는 야웨의 훈계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앗수르의 도움을 구하였다. 앗수르가 와서 732년에 다메섹(Damascus)을 타도하였으며, 730년에는 이스라엘 왕국의 일부를 착복하고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갔다(왕하 15 : 29), 베가(Pekah)가 호세아에게 살해 되었을 때, 앗수르는 그 일을 조용히 무마시키려고 전혀 이의를 달지 않았다. 호세아가 처음에 앗수르에 조공을 바쳤으나 그 뒤 그의 충성을 애굽으로 바꾸었을 때, 사마리아(Samaria)는 살만에셀의 군대에 포위되었으며, 오랜 포위 후 사르곤에게 점령되었다. 극빈한 자들을 제외한 이스라엘의 남은 백성들은, 자기들의 고국으로부터 암송되어 "앗수르.힐라, 고산의 하블강 그리고 메데 사람의 여러 고을"로 옮겨졌으며 (왕하 17 : 3∼6), 그곳에서 그들은 8년전에 요단강 동편과 이스라엘 영토의 북쪽 지역들로부터 추방되어 왔던 그들의 형제들과 병합하였다(대상 5 : 26).

그 동안에 외국인들(왕하 17 : 24)이 사마리아와 그 인근 성읍들에 이주했다. 이 외국인들은, 이스라엘인들과 결혼했으며 이 혼잡속에게 '사마리아 인'이란 이름이 주어졌다. 왕하 17 : 34∼41를 읽어라.

3. 사마리아 멸망에서 예루살렘 멸망까지

(연대 : 722∼586 B.C. 성경 : 왕하 18∼25장)

(1) 722∼686 : 사마리아 멸망에서 히스기야 사망까지

산헤립은 또한 군대를 보내어 예루살렘을 포위하였다. 이 위기의 때에 대 개혁자 왕인 히스기야는 야웨를 신뢰하였다.

그러므로 야웨의 보냄을 받은 이사야가 그 왕에게 놀라운 구원을 확신시켜 주었다. 이 구원이 이사야 37 : 36 이하에 묘사되어 있다.

(2) 686∼686 : 외국의 지배(통치)

경건한 왕 히스기야로 말미암아 일어난 그 영광스런 개혁은(대하 29∼31장) 지속적 영향력을 갖지 못하였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의 오랜 통치중에, 우상들이 그 나라 전역에, 심지어 야웨의 전안에 까지(대하 33 : 7)세워졌다.

그의 악한 본을 쫓기 거부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했다.

예레미아 15 : 4은 다음과 같은 놀라운 심판을 선언하고 있다.

"유다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바를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열방 중에 흩으리라." 이 악한 왕의 통치 중에 앗수르의 권세가 그 절정에 이르렀다.

정치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유다는 이 이방제국에 지배당하고 있었다. 이와 같이 예속된 한 나라의 남은 신자들에게 나훔(Nahum) 선지자는 니느웨(Nieneveh)의 멸망과 영광스러운 시대의 도래를 알려 주었다.

(3) 636∼586 : 유다의 멸망

므낫세가 노년에 회개를 했지만, 이와 같은 회개가 너무 늦어서 이미 범해진 악을 제거하여 원상태로 돌릴 수가 없었다. 그의 아들 아몬(Amon)은 악한 왕이다.

그의 신하들이 그를 암살했으며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아들 요시아(Josiah)를 왕좌에 올렸다(대하 33 : 21∼25) 따라서 여기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 되었으니, 이 때는 B.C. 636년 직전이었다. 이 때는 선지자 스바냐(Zephaniah)시대 이었다. 장인들이 성전을 수리하는 중에 "모세의 손에 의하여 기록된 야웨의 율법서"가 발견되었다.

요시야는, 야웨의 율법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을 예루살렘과 그 근방에 모으려고 노력하였다. 므깃도(Megiddo) 전투에서 요시야 왕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대하 35 : 20∼37). 백성이 선정한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는 곧 애굽왕 느고에 의하여 끌려가고, 폐위된 왕의 형제인 여호야김이 대신 하였다. B.C. 605년 칼케미쉬(Carchemish) 전투에서(대하 35 : 20, 렘 46 : 2을 보라),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애굽왕 노고를 패배시켰으며, 따라서 바벨론 통치의 70년이 시작되었다(렘 25 : 1, 12, 단 9 : 1∼2).

다니엘(Daniel)과 그의 친구들이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것(단 1 : 1)은 이 때이었거나 혹은 직후이었다. 하박국(H abakkuk)은 그 악한 여호야김 통치 중에 예언하였다.

요시야의 셋째 아들 시드기야가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다. 예레미야와 에스겔 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애굽을 신뢰, 바벨론 왕에게 반역하였다. 결국 갈대아 군대가 와서 솔로몬의 아름다운 성전을 포함하여 예루살렘을 진멸하였다. 시드기야의 비극적 종말은, 왕하 25 : 4∼7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극빈자들은 제외하고 그 백성은 바벨론으로 끌려갔다(왕하 25 : 11). 바벨론 포로의 가장 깊은 이유는 대하 36 : 14이하에 제시된다.

야웨는 자기 백성의 재난(참화)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유다 사람들의 혈족인 에돔 사람들(Edomites)이 예루살렘의 멸망을 기뻐하였을 때, 오바댜 선지자는 위임받아 에돔의 비참한 운명을 선언했던 것이다.

제 4 장 성경대학문제집

학번 : 제 번, 반, 성명: (남, 여)

★ 주여! 국가의 흥망성쇠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음을 알고 하나님께 국가를 맡기게 하소서!

Ⅰ.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1. 이스라엘의 첫 번째 두 번째 왕은?

2. 사울의 영광은 잠깐 번쩍였던 무엇과 같은 것이었나요?

3. 다윗의 영광은 신랑이 나온 것 같은 무엇과 같은 것이었나요?

4. 솔로몬의 통치를 3단어로 나눈다면?

5. 솔로몬의 통치의 치고의 업적은?

6. 솔로몬의 쇠퇴는 왜 왔는가?

7. 솔로몬의아들 르호보암 때는 국가가 어떻게 되었는가?

8. 북왕국 이스라엘을 여호보암 1세가 몇지파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나요?

Ⅱ. 다음 물음에 맞는 답의 번호를 ( ) 안에 써 넣으시오

1. 남쪽 유다 임금 여호사밧은 북쪽 임금 오므리의 아들 누구와 화합했나요?( )

① 아합 ② 에후 ③ 요람 ④ 여호보암

2.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담은 아합의 딸 누구와 결혼했나요? ( )

① 이세벨 ② 아달랴 ③ 드보라 ④ 이스할

3. 북쪽 왕 아합은 어떤 여자와 결혼하였나요? ..............( )

① 나오미 ② 이스할 ③ 이세벨 ④ 미갈

4. 이세벨은 우상을 섬겼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어떻게 했나요?( )

① 죽었다. ② 잘 대우했다 ③ 추방시켰다 ④ 가만두었다

5. 이 시대의 선지자로 활동하였던 두 선지자는? .............( )

① 요나,미가 ② 엘리야,엘리사 ③ 이사야,다니엘 ④ 에스겔,요엘

Ⅲ. 다음 물음에 ( )안에 ○,×로 표하시오.

1. 오므리 왕조의 종말은 에후를 통하여 하였다 ..............( )

2. 웃시야 왕의 시대는 매혹의 시대였다 .................( )

3. 북조 이스라엘은 B.C. 722년에 앗수르에게 완전히 망하고 말았다( )

4. 히스기야 임금은 선한 임금이었고 그의 아들 므낫세도 아주 선한 왕이었다( )

5. 남쪽 유다는 B.C. 586년 시드기야 왕 때 멸망하였다 .....( )

제3부 제4장까지

Ⅰ. 1. 사울, 다윗 2.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린 유성 3. 태양의 영광 4. 홍함, 빛남, 쇠퇴함 5. 웅장한 성전세움 6. 이방신들을 위한 신당을 세웠기에 7. 왕국분열 (종족상쟁)이 됨 8. 10지파

Ⅱ. 1. ① 2. ② 3. ③ 4. ① 5. ② Ⅲ. 1. ○ 2. ○ 3. ○ 4. × 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