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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장 구약성경의 전승 제 10 장 구약성경의 역본들

2024년 12월 12일조회 7

제 9 장 구약성경의 전승

구약의 원본들이 없어지고 손으로 기록한 사본들이 우리에게 전해오고 있다. 이 구약 사본들의 전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맛소라 학자들이다. 이들은 주후 500년부터 950년 사이에 활동했던 학파들로서 그 이전에 전해오던 권위 있는 사본들을 정리하였다.

1. 마소라 학파 이전시대

(1) 서기관 학파 - "서기관(書記官)'이란 직책이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다윗 시대 이전부터 시행된 제도라고 생각된다. 이미 사사기에서 드보라의 노래 가운데 '서기관'이 언급되고 있다. (삿 5 : 14) 그리고 삼하 8 : 17에서 다윗 정부의 관리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의 직책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런데 구약성경 전승에 큰 역할을 한 것이 서기관 학파라 할 때는, 대체로 구약성경이 완성된 때인 에스라 때부터 성경의 본문을 파수하고 전승한 학파를 가리킨다.

이 학파를 '서기관 학파'라 부른 것은, 탈무드에 따라 그리한 것인데 이들이 오경 글자 수를 철저하게 세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기관 학파의 활동은 주전 400년에서 주후 200년까지 계속되었는데, 그렇지만 유대인 전통에 의하면 보다 정확히 말해 주전5세기부터 주전 3세기까지(에스라 때부터 소코의 안티고스<Antigonus of Socho>) 활동한 초기 서기관들만을 지칭하고 있다.

서기관 학파들의 특수한 임무는 성경의 사본을 만들고, 가장 정확한 본문의 독법을 규명하여,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서기관 학파가 취급한 구약 본문은 자음으로만 된 것인데, 이들은 구약 각 책의 절(verse) 수와, 단어(word) 수와 글자(Letter) 수를 정밀히 계산하여 각책 끝에 그 숫자를 기록하였다.

그래서 누구든지 사본을 대할 때, 그 수(數)가 맞지 않으면 그 사본에 오류가 있음을 알게 하였다. 이 서기관 학파가 계산한 글자 수는 나중에 기록된 맛소라 본문 각 책의 말주에 기록되어 있다. 또한 맛소라 전통이 지적한 바에 의하면 구약의 본문에 18군데의 서기관들의 수정(tiqqune Sopherim)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의 격위를 높이려는 정신에서 유래 된 것이다. 성경 본경 본문 표현에서 하나님이 인간과 대등한, 또는 그와 비슷한 형태로서 나타날 때, 그 문장의 글자를 바꾼다든지, 또는 단어들의 순서를 바꾸는 방법 등을 통하여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격위를 높이려고 하였다.

예를 들면 창세기 18 : 22 하반절은 본래 '여호와는 아직 아브라함 앞에 섰더니'라는 내용인데, 서기관 학파는 '여호와'와 '아브라함'의 상호 단어 순서를 바꾸어 '아브라함은 아직 여호와 앞에 섰더니'로 고쳤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 앞에 시중들기 위해 서 있는데, 원래의 여호와가 아브라함 앞에 서 있다는 표현은 온당치 않은 표현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예를 들면, 사무엘상 3 : 13에 엘리제사장의 아들들이 저희 스스로를 저주했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원래 그들의 '하나님'을 저주했다는 내용을 저희 스스로를 저주한 것으로 고쳤다. 구약의 고대 역본인 70인역을 보면 이 구절에서 원래의 '하나님'으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2)주고트(Zugoth)학파 - 서기관 학파에 이어 성경 파수와 전승에, 그리고 성경 본문 교육에 노력한 학파는 주고트(Zugoth)학파였다. 이들은 주전 2세기부터 주전 1세기까지, 즉 조에져(Jose ben Joeger)시대로부터 힐렐(Hillel)시대까지 라고 한다.

(3) 탄나임(Tannaim)학파 - 주고트 학파 이후, 릴렐 이후부터, 주후200년이 조금 지난 한나시(Judah Hannasi)가 죽을 때까지 성경 본문 파수와 교육, 그리고 전승에 노력한 락파가 탄 나임 이다.

2. 맛소라 학파(앞서 살펴본 서기관 학파)

주고트 학파, 탄나임 학파가 대략 주전 400년에서 주후 200년까지 성경의 본문 파수와 전승, 교육에 노력하며 가르친 내용이 미쉬나(the Mishnah), 토세프타(the Tosefta), 바라이토트(the Baraithoth)에 수록되었다.

이 기록들 가운데 200명이 넘는 탄나임 학자들이 언급되는데 그들 대부분은 '랍비(Rabbi)'나 '랍반(Rabban)'이라 불리워진다. 그 뜻은 '선생'이란 의미이다.

(1) 미드라쉬(the Midrash) - "미드라쉬'는 '본문연구'나 '본문해석'을 뜻하는 말로서, '다라쉬=찾다. 수색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된 책명이다. 주전 100년에서 주후 300년에 편찬된 것으로 구약을 교리적으로, 그리고 설교조로 설명한 것이다.

미드라쉬는 히브리어와 아랍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 두 부분은 율법만을 주석한 할라카와, 전 구약을 주석한 학기다 로써 구성되어 있다. 후자는 여러 가지 잠언, 예화, 이야기 등을 포함하고 있다.

이것들은 유대인 회당에서 일찍이 설교되었던 내용들이다. 또한 이 주석 가운데 구약 원본을 직접 인용한 부분이 많은데, 성경 본문 비평에 좋은 재료로 사용된다.,

(2) 토세프타(The Tosefta=첨가, 혹은 보충이란 뜻)-주후 100년에서 300년 사이에 만들어졌다. 미쉬나에 직접 관계했던 탄나임(Tannaim)학파의 가르침과 전통을 수집한 것이다. 전통에 의하면, 랍비 아키바(Akiba, A.D. 약 100)는 미쉬나를 편집하면서 많은 부분을 생략하였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미쉬나에 기록된 내용을 잘 외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토세프타는 그 생략된 부분을 기록하고 있어 미쉬나 완본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 탈무드(The Talmud) - 주후 100년에서 500년 사이에 편집되었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① 미쉬나인데 주후 200년경에 완성되었으며 히브리어로 씌어있다. 모세가 그의 70인 장로들에게 말했다고 하는 모든 구전의 율법을 간추려 적고 있으며, 전통, 그리고 성경에 대한 설명 등을 기록하고 있다. 미쉬나는 여섯 부분(the six orders)으로 나누어졌는데, 농업, 축제, 여자, 형법과 민법, 제사와 신성한 것, 그리고 부정한 것으로 나누어져 있다. 또한 이들은 다시 63개의 작은 주제로 세분화 되었다. 이 미쉬나에 기고한 학자들은 '탄나임'이라고 불리운다.

② 게마라인데 아랍어로 씌어있다. 미쉬나를 더욱 자세히 해석해 주는 중보판과 같은 것이다. 게마라는 두 개의 형태가 있는데, 하나는 팔레스타인 게마라(A.D. 200) 족으로서, 그 중 벤 아쉐르 자신과 그의 아들 아론이 유명하다. 벤 아쉐르는 주후 895년에 선지서 사본을 복사하여 거기에 모음과 맛소라를 삽입했다. 소위 이것이 카이렌스 사본(Codex Cairensis)이다. 그리고 유명한 구약 전권의 레닌그라덴시스 사본(Codex Leningradensis)이, 아론이 기록한 맛소라 성경 사본은 주후 1105년에 발견된 루클린 사본(The Reuchlin Codex) 등이나 모두가 단편적인 것이다. 이 납달리 가족의 사본들은 벤 아쉐르 가족의 사본들에 비해 별로 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특별히 위대한 유대인철학자 마이모니데스(Maimonides, A.D. 1135-1204)가 벤 아쉐르 가족의 본문과 모음이 벤 납달리 가족의 것들보다 더 우월하다고 발표한 후, 벤 아쉐르 가족의 맛소라성경이 표준 성경본문으로서 받아지고 있다.

그러나 벤 아쉐르 가족의 성경 본문이 벤 납달리 가족의 성경 본문의 영향을 받아 모음과 악센트 문제에 있어서 보다 정확성을 갖게 되기도 했다.

제일 먼저 인쇄된 성경은 1477년 시편 볼로그나(Bologna)판이다.

제일 먼저 인쇄된 성경 전권은 1488년 손시노(Soncino)에서 출판되었고, 제1의랍비 성경은 1516-1517년에 프라텐시스(Felix Pratensis)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봄버그(Daniel Bomberg)가 베니스에서 출판하였다. 제2의 랍비 성경은 1524-1525년에 카임(Jacod ben Chayyim)이 4권으로 만들었는데, 봄버그(Bomberg)가 출판 하였다.

제2의 랍비 성경은 출판 후 곧 그 중요성을 인정받았는데 그 이유는 성경 사본들과 출판된 성경들을 연구하여 발행한 수정판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19세기 까지는 사실상 표준 성경으로써 권위있게 받아졌었다. 그러나 1720년에 출판된 미카엘리스(J.H.Michaelis)의 첫 성경 원문 비평 연구판은 제2랍비 성경과 다른 이문(異文=variant reading)을 가진 사본들을 참고했음을 보여주며, 1776년에는 영국 옥스퍼드의 켄니코트(Kennicott)가 이문들을 간결하게 수집하여 출판했다. 또 1784-88년에 룻시(J.B. de Rossi)가 캔니코트보다 많은 본문 비평의 자료를 꼼꼼히 분석하여 이문들(varient readings)의 수집판을 4권으로 출판했다. 1869년부터는 베어(S.Bear)가 델리취(Franw Delitzsch)와 공동으로 초기 성경사본과 인쇄물과 인쇄판들을 연구하여 가능한 가장 정확한 맛소라 성경 본문을 출판하려 했다. 그러나 이들의 성경본문이 많은 중요한 자료들을 싣고 있으나 그 자료를 채제 없이 독단적으로 다루어, 실제로는 전에 없었던 본문을 만들어 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베어(Baer)의 성경판은 조심스럽게 읽어야 한다. 1908년 이후 킨스버그(Christian D.Ginsburg)는 영국 해외 성서 협회를 위해 성경 본문을 준비하면서, 주로 카임의 제2랍비 성경을 프린트했다. 그는 이 성경에 70개가 넘은 성경 사본과 1524년 전에 출판된 19개의 성경 인쇄판을 비교하여 이문(異文=variant reading)들을 본문 비평란에 기록하였다. 영국 해외 성서협회는 스네이트(Norman H. Snaith)가 준비한 새로운 성경판을 1958년에 다시 출판했는데, 이는 대영 박물관 동양 사본 2626-2628을 주로 근거한 것이다. 그리고 대영 박물관 동양사본 2357와 셈 토브(The Shem Tob) 성경도 이용했는데 이들 사본들은 벤 아세르 전통을 나타낸 것으로서 키텔 히브리 성경(The Shem Tob) 성경도 이용했는데 이들 사본들은 벤 아쉐르 전통을 나타낸 것으로서 키텔 히브리 성경(Biblia Hebraica)과 아주 일치되는 성경 본문을 만들도록 해 주었다.

키텔(Kittel)히브리 성경은 첫 두 판까지 카임의 제2랍비 성경을 기초로 하여 만들어졌으며 키텔 히브리 성경 제3판에서 칼레(Paul Kahle)는 벤 아쉐르의 맛소라 성경에 근거된 레닌그라덴시스 사본(Codex Leningradensis)을 기초하여 만들고 이문(variant reading)들을 본문 비평란에 기록하였다. 키텔 히브리 성경 3판(BH3)은 각 페이지 밑에 본문 비평란이 있다. 이 본문 비평란은 두 항목으로 나누어지는데 윗 항목에서는 다른 히브리 사본들과 많은 구약 성경 번역본을 비교하여 서로 다른 어귀 곧 이문들을 기록하였고, 아래 항목에서는 편집자들이 추측하여 수정하기를 원하는 이문(異文)을 기록 하였다. 그리고 이사야서를 보면 본문 페이지 제일 밑에 특별히 제3항목이 있는데 이는 사해 사본과 비교하여 다른 이문들을 기록하는 난이다. 이 키텔 히브리 성경3판(BH3)을 수정하여 엘리커(K.Elliger)와 루돌프(W.Rudolph)는 히브리 성경4판을 출판하였다. 이를 'Biblia Hebraica Stututtgar tensia<BHS>'라 부른다. 히브리 성경 4판에서는 본문 각 페이지 밑에 있는 본문 비평란이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두 항복이나 세 항복으로 나누어지지 않고, 한 항목으로 되어 있으며, 키텔 히브리 성경 3판에 있는 본문 비평을 수정하여 기록하고 있다.

제 9 장 성경대학문제집

학번 : 제 번, 반, 성명: (남, 여)

★ 주여! 달고 오묘한 귀한 말씀이 우리에게 까지 오게 된 것을 정말로 감사케 하소서!

Ⅰ. 다음 물음에 답하시오.

1. 구약의 원본은 없어지고 우리에게 전해 오는 것은?

2. 구약 사본들의 전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3. 서기관 학파의 활동 기간은?

4. 서기관 학파의 특수 임무는?

5. 서기관 학파 다음으로 성경 전승에 노력한 학파는?

6. 주고트 학파 다음으로 성경 전승에 노력한 학파는?

7. 랍비나 랍반의 뜻은 무엇일까요?

8. 주전 100년∼주후 300년 어간에 편찬된 구약을 교리적으로 기록된 책명은 무엇인가요?

9. 탈무드의 첫 부분은 무슨 글로 둘째 부분은 무슨 글로 기록되었나요?

10. 제1의 랍비 성경은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출판되었나요?

Ⅱ. 다음 물음에 ( )안에 ○,×로 표하시오.

1. 제2의 랍비 성경은 봄버그가 4권으로 출판하였다..........( )

2. 제2의 랍비 성경은 19세기까지 표준 성겨의 권위가 있었다.( )

3. 주후100년에서 300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은 탈무드이다....( )

4. 키텔 히브리 성경 3판은 각 페이지 밑에 본문 비평란이었다( )

5. 탈무드에는 서기관 학파에 대한 말이 전혀 없다. .........( )

제2부 제9장에서

Ⅰ. 1. 손으로 기록한 사본 2. 맛소라 학자들 3. 주전 400-주후 200 4. 성경사본, 가장 정확한 본문 독법규명, 후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 5. 주고트학파 6. 탄나 임학파 7. 선생 8. 미드라쉬 9. ① 히브리어 ② 아람어 10. 1516∼1517

Ⅱ. 1. ○ 2. ○ 3. × 4. ○ 5. ×


제 10 장 구약성경의 역본들

이 번역 사업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계속하는 것인데 이유는 성경에 대한 지식을 알고 언어의 변화 때문인 것이다.

1. 70인역(Septuagint. LXX).

구약 히브리어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다. 구약의 본문 비평에 있어서 가장 유력하게 사용된다. 70인역은 애굽왕 토레미 2세 피라델퍼스(ptolemyⅡ philadelphus. 285-246 B.C.)가 당시 팔레스턴에 살던 이스라엘 12지파로부터 각 6명씩의 유능한 학자들을 초청하여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토록 한것이라는 설이었다. 이 70인역은 주전 130년에 완성되었는데 구약번역 중 가장 저명한 고대 역이다.

2. 탈굼역(Targum)

구약을 아랍어로 번역한 것인데 한 사람의 계속역이 아니고 여러 사람들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들을 모아 엮은 것이다. 이 역문은 주로 자유로운 설명역으로 되었으나 그 가운데 온켈로스(Onkelos)의 번역은 여자적으로 번역되었다. 탈굼의 연대는 AD 6∼7세기경으로 추측되나 확실치 않다.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돌아온 후 히브리어를 잊어버린 때문에 헬라어 아람어를 아는 사람이 번역한 것이다.

이것은 히브리어 본문에 가장 가까운 것이다. 그런데 3할이 원문이고 7할은 해석으로 되어있다.

3. 페쉬타역(Peshitta)

수리아역인데 신구약이 다 있다. AD 2세기 중엽에 완성된 듯하고 그 성격은 모든 옛 역문들 가운데 가장 정확성을 가진다고 한다. 거기에는 70인역과 일체하는 부분들이 있기 때문에 어떤 이는 말하기를 페쉬타 역자가 70인역을 사용했다고 하나 70인역과 일치하지 않은 부분들도 있고 보충한 것도 있다.

4. 라틴 벨겟 역(Vulgate)

이것은 제롬(Jerome)이 AD 390년에 착수하여 구약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인데 처음에는 환영을 받지 못했으나 후에는 교회에 채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