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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7 과 이단자 경계의 데살로니가 후서

2024년 12월 12일조회 7

제 37 과 이단자 경계의 데살로니가 후서

성경본문 : 데살로니가 후서 2 : 1∼17

외울말씀 :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살후 2:4)

부를찬송 : 262장, 168장, 544장

본서는 전서와 함께 바울 서신 중에서 가장 초기의 저작이며 거의 같은 시기에 순서적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그 주제도 종말론으로 주님의 재림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는 전서와 본서를 공부하면서 내 자신을 한 번 더 성찰해 보아야 하겠다.

신랑 예수님이 곧 오시는데 신부인 우리는 어떠한가? 이다. 가장 중요한 기름준비는 되었는가? 지금 깊은 밤 중 시대인데 졸고 있지 않는가? 신부의 인격적 신앙적 행위적 단장은 완벽한가? 지금 이 시간에 주님이 오신다면 세상 것 뒤돌아보지 않고「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1하)하고 주님 앞에 설 수 있겠는가? 신부의 단장을 하면서 공부하는 우리가 되어보자.

첫째 데살로니가 후서의 개론

1. 데살로니가서의 명칭..데살로니가의 지명을 따라서 붙여진 명칭이다. 헬라어 성경은「프로스 데살로니케이스ㆍ베타(데살로니가 후서)」이다. 내용의 흐름으로 이단자 경계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서신이다. 구성은 3장, 47절로 되어 있다. 본서에 나온 명칭의 회수를 조사하여 보니「우리」란 말이 35회,「주」가 21회,「하나님」18회, 「그리스도」10회,「형제」8회,「영광」6회,「믿음」「사랑」이 각각 5회, 「편지」「은혜」「사람」「인애」란 말이 각각 4회에 나오고 있다.

2. 데살로니가 후서의 배경..본서를 보나 누가가 고린도에서의 바울의 목회를 설명한 것이나 어느 쪽이나 데살로니가 교인과의 생생한 접촉을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울은 교인들 가운데서 어떤 마땅치 않은 환경을 들었으며(3:11) 분명히 자신이 보낸 서신을 통하여 주님의 재림에 관한 일련의 교훈을 새롭게 하기 위한 어떤 시도를 알고 있었다(2:2). 바로 이것이 본서의 저작에 대한 중요한 자극 요인이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 장차 오실 주님의 재림의 주제를 주로 지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그러한 특별상황에 대한 압박으로 벗어나서 개종자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기를 바랐다. 그 개종자들은 신앙이 어리기 때문에 그의 충고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는 다시 편지를 쓸 기회를 기꺼이 맞이하게 되었다.

3. 데살로니가 전서와의 관계..① 하르낙(Harnack)은 데살로니가서에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신자 그룹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방인 계열이요(전서) 후서는 유대인 계열의 대상이라고 하였다. 이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두 그룹은 실제적으로 크리스챤의 단합을 부인하게 된다. 특별히 사도회의의 중대한 결정 후에는 더욱 부당했을 것이다(행 15:19-29). 사도회의의 중대 결의는 두 요인들간의 장벽을 파괴하는 것이다.

② 또 다른 문제는 두 편지의 연대적 순서에 관한 것이다. 어떤 유명한 학자들은 본서가 먼저 기록했다는 입장을 취한다.

두 번째 관찰은, 후서의 단순성과 직접성을 대조해보면 긴급 사태를 수습키 위한 모종의 조치가 생김에 따라 전서는 더욱 심각하고 주의 깊게 편지를 썼다는 결론을 얻는다. 이것은 심각한 논쟁점은 아니다. 사도는 오랫동안 교회의 기초를 이룬 환경과 후에 교회보다 초기교회에 있어서 회중과의 교체에서 있었던 발전을 회상했으리라 기대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서에서 발견하는 점이다.

③ 전서가 주후 51-52년경에 고린도에서 기록하였다면 본서 역시도 고린도에서 2-3개월 후에 씌어졌다고 시간을 배정할 수 있다.

4. 데살로니가 후서를 기록한 목적..이 편지는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것이다.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도록 데살로니가 전서를 보낸 후 얼마 있지 않아 쓴 것이다.

주의 날이 오는 것에 관한 그의 가르침(살전 5:1-11)에 대해서 다소 오해가 있었거나 오전(誤傳)이 있었다는 말이 바울에게 전해졌다(2:2). 어떤 사람들은 심판이 벌서 시작되었는데 바울은 그들이 그러한 심판에서 제외되었다(면제되었다)고 가르친 것으로 이해했다. 이 교리적 혼란이 가져온 실질적인 결과는 심각한 문제였다.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왔다(임박했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이 일하는 것을 그만두고 난처한 상황을 만들어냈다(3:6, 11). 바울은 그의 가르침을 바로 깨우쳐 게으른 자들을 호되게 꾸짖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선을 행하다가 낙심하는」위험에 빠진 모든 성도들을 권면하기 위하여(3:13) 기록하였다. ☞ 살후 3 : 13-14

둘째 데살로니가 후서의 본문 약해

본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재림 주로 묘사한다.

1. 서론(1:1-2)..바울의 인사는 언제나 하나님과 그리스도로부터이다.

2. 감사의 핍박을 이기도록 격려함(1:3-12)..◎ 바울은 독자들 중에 신앙과 사랑의 진보를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박해 중에도 이와 같은 발전이 생긴 것을 주시하면서 먼저 격려를 하였다(1:3-4). ◎ 바울은 다시 그의 동역자들에게 핍박자와 핍박을 받는 사람들의 위치가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급격히 다르게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시켰다. 그리스도는 현재 고난당한 성도들에게 안식을 줄 것이지만 성도를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는 무거운 형벌을 줄 것이다(1:5-10).

3.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위한 교훈(2:1-17)..◎ 이러한 내용은 서신의 핵심부분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것은 주님의 재림을 취급하는 것이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경고적인 징조는 배도자와 무법다의 출현이다(1-5). ◎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구속력을 택한 민족들은 최상의 무신론적인 법망의 성취로부터 보호하신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정한 일정한 시기에 나타나셔서 재림주의 손으로 여지없이 보호할 것이다(6-17).

4. 기도와 규율에 대한 교훈(3:1-15)..◎ 바울의 확신(1-5), ◎ 감사와 교훈으로 서신의 나머지 부분을 특징지운다. 게으르고, 재잘거리고, 반항하는 자들은 해로운 자들이다(3:6-15). 그들이 구세주를 기다리고 있는 사이에 신자들은 근면하며 부지런하여야 한다고 명령한다.

5. 축도와 인사(3:16-18) ☞ 살후 2 : 8

셋째 데살로니가 후서의 신학적 용어해설

1. 영원한 멸망(1:9)..이것은 완전히 없어지는 것(無로 되는 것)이 아니라 주의 존재로부터 분리되기 때문에 파멸되는 것을 말한다. 살전 5:3절에서 말하는 멸망은 갑작스러운 것이지만 여기서 멸망은 영원한 것이다. 이 멸망은 복음의 원수들, 이단자들, 사단의 무리들이 받는 것이다.

2. 대적하는 자(2:4)..이는 적 그리스도로서(마 24:15, 멸망의 가증한 것), 그는 환란의 중간 시점에서 환란기 시초에 유대인들과 맺은 계약을 깨뜨린다(단 9:27) 그리고 유대 백성들 및 온 세계를 향해 자신을 숭배하라고 강요한다. 항거하는 자들은 박해를 면치 못할 것이며 많은 사람이 순교당하게 될 것이다.「하나님의 성전에 앉아」(마 24:15) 이는 공공연히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를 신격화하는 엄청난 인간죄악의 극치를 말하는 것이다. 지금이 그런 시대임을 실감케 한다.「내가 하나님이다」는 사람, 얼마나 많은가?「하나님은 죽었다」「하나님 위에 하나님을 찾자」는 사상적 적 그리스도들, 9절의 사단의 역사로 능력, 표적, 기적을 행하는 종교적 적 그리스도들이 판을 치고 있는 시대이다.

중요하게 관찰할 것은「대적하는 자」즉「적 그리스도」가 언제 나타날 것인가? 하는 문제인데 2:3절을 보니「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라고 하였으며, 우리 예수님의 재림 직전에 일어난다는 것이다.「적 그리스도」는 결코 추상적인 인물이 아닌 하나의 구체적이고 인격적인 인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 살후 2 : 9-10

맺는말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예수님의 재림을 재촉하는 징조들이 다 나타나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 24장의 징조들이 다 이루어진 것 같다. 무섭고 두려운 떨리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세상종말」과「예수님의 재림」은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 때는 구원받고 준비된 성도는 최대로 기쁜 날이요 상급 받는 영광의 날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 밖에 사람들, 사단의 권내에 속해있는 자들은 최고로 무서운 날이 그 날이니 심판을 받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