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과 구원 교리의 책 로마서(1)
2024년 12월 9일조회 13
제 26 과 구원 교리의 책 로마서(1)
성경본문 : 로마서 1 : 16-17
외울말씀 :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 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부를찬송 : 340장, 434장, 343장
로마서는 신약의 서신 중에서만 아니라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서신으로 일컬어진다. 이것은 본서가 내용상으로 볼 때 서신의 주제, 포괄성, 논거의 정확성, 전망의 광대함, 문제의 활력 등에서 잘 나타난다. 그리하여 한결같이 위대한 신학자들의 찬탄을 받아왔으며 어거스틴을 비롯해서 개혁자 루터와 칼빈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고뎃(Godet)은「오, 바울 사도여, 그대가 단지 로마서 한 권만을 내 놓았다 하더라도 그대는 여러 가지 이유로 그 로마서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귀인이 되었을 것이외다」고 하여 로마서의 최고의 찬탄을 표시하였다. 이 귀한 로마서를 두 번 나누어서 연구해 보자.
첫째 로마서의 명칭에 대해
맨 첫 절인 1:1절에「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으로 시작하여 맨 마지막 16:27절에「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으로 끝이 난다.
둘째 로마서의 배경
1. 로마서..「영원한 도성」으로 불리우는 도시로「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말해질 정도로 로마는 고대제국에 있어서 정치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서구의 중심지였고 또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 도성이다. 이 도시는 B. C. 753년에 건설되었고 바울시대는 110만의 인구가 있었는데 대부분은 노예들이었다. 시저의 성공은 대제국을 형성케하여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2. 로마의 교회..바울과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당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중의 어느 한 사람이 로마의 교회를 창건하였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짐작컨대 성령강림 오순절에 회심한(행 2:10) 사람들이 이 제국의 수도에 복음을 가지고 돌아갔든지 아니면 바울이나 그 밖의 다른 사도들의 전도로 회심한 자들이 그 곳에 교회를 세웠을 가능성이 있다. 그 구성원은 이방인이 지배적이었다(1:13, 11:13, 15:15, 16). 천주교에서 말한 베드로가 세웠다고 말한 설은 성경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이설이다.
3. 로마 교회의 규모..사람의 집단이란 합당하다고 인정을 받을 때까지 '어디에서든지 반대를' 당하기 마련이다. 더 나가서 바울이 로마에 갔을 때 친교를 나눈 사도행전 28장의 내용은 반대보다는 숫자가 많다는 것과 열심히 있는 집단의 개념을 암시하여 준다. 그는 로마에 도착하기 전 보디올에서 형제들을 만났고 이들은 그를 한 주일동안 접대하였다. 교인들은 바울을 만나기 위해 로마에서 삼관까지 나왔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용기도 얻었다(행 28:13-15).
4. 본서의 수신자(유대인, 이방인)..본서는 로마교회를 대상으로 한 서신이다(1:6-7, 15). 그런데 문제는 유대인을 상대한 것인가 이방인을 상대한 것인가가 문제이다. (1) 수신자가 유대인 걸은 ① 3:9절의 우리란 공통으로 유대인이요, ② 4:1절의 조상된 아브라함, ③ 7:1-6 율법을 아는 자들, ④ 9:-11장에 유대인 구원, ⑤ 율법을 배경한 복음 입증, 구약 인용이 많은 때문이다.
로마서의 저자는 사도 바울이다(1:1). 그의 서신은 로마서에서 빌레몬서까지 13권이나 된다. 이는 신약 27편 중 절반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개인신상에 대해 정리하면 사울(Saul, 크다, 많다, 높다)이었던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부터 (행 9:4-9) 그 이름이 바울(Paul, 작다, 낮다, 길다)로 바뀌었는데 야곱이 이스라엘이 되듯이 인격의 변화, 신앙의 변화, 사상의 변화를 보여준 것이다. 그는 원해 디아스포라 유대인 가운데 속하여 당시 희랍 문화의 일대 중심지인 스토익의 학문의 도시 다소(행 22:3)에서 태어났다. 베냐민지파(빌 3:5)요 바리새인 출신인 그는 예루살렘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수학하고(행 22:3) 완벽한 율법주의자가 되었다. 기독교를 이단시하고 스데반을 죽이는데 옷을 맡은 증인이 되었고 대제사장의 박해 허가서를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주님과 만나 그리스도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는 이방인을 위하여 부름 받은 사도로서 일생 빚진 자의 심정을 품고 복음사역의 최전선에서 노사령관으로 일생을 바친 자가 되었다.
그는 본래 유대인으로서 로마 시민권을 소지한 상류 가정에서 태어나 부유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로마 옥중에서 쓴 빌립보서를 보면 "어떤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워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 12)고 했으며, 디모데후서 4:13, 14에서 "네가 올 때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져오고, 또 책은 특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구리장색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보였다"고 한 표현은 그의 삶의 모습을 함축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주후 67년경 로마황제 네로의 박해 때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고 한다.☞ 행 20 : 24
바울의 현재의 위치는 그의 제3차 선교 여행을 말기에 희랍에 머문 시기였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행 20:2). 이제 그는 서부를 향하여 나아가게 되었다. 로마만 아니라 서바나에서 까지 선교하기를 원했기 때문이다(롬 15:24, 28). 그는 여기에서 가난한 그리스도인을 돕기 위해 여러 교회가 헌금한 헌금을 가지고 예루살렘에 가려고 하였다(롬 15:25). 그러므로 본 서신은 그의 제3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 시기에 썼다는데 의심이 없다. 또 이 결론을 내리는데 16장에 어떤 암시가 있다.
파송된 장소로 고린도를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 롬 15 : 28
다섯째 로마서를 기록하게 된 목적
로마서의 목적은 무엇인가? 본서의 저작 목적에 관하여는 길게 논의되어 온 문제로 대체로 아래와 같이 구분할 수 있겠다.
1. 교리적이라는 견해..이 견해는 오리겐(Origen) 크리소스룸을 비롯하여 개혁자 루터, 칼빈이 지지하는 가장 유력한 것이다. 개혁자 멜랑톤이 본서를 "그리스도교의 교리의 대요"라고 한 것처럼 본서는 교리의 책이요 이것이 정연히 조직적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본서가 기독교의 교리 전체를 담고 있지는 못하다. 본서에서 우리는 중점을 이신득의에 두고 있는 볼 수 있다.
2. 논쟁적이라는 견해..이 견해는 특별히 독일의 튜빙겐 학파의 시조 바우르(Baur)에 의해 주장된 것으로 그는 본서를 당시 역사로 보고 본서의 핵심을 9-11장으로 본다. 그리하여 목적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요소의 대조적인 것을 화해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 견해는 오늘에 와서 거의 신임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어쨌든 본서의 목적은 주로 교리적인 면에서 볼 수 있겠으나 논쟁적인 면, 조화적인 면도 엿보임을 의심할 수는 없다. ☞ 롬 1 : 11
맺는말
우리의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다 뿌리를 깊숙이 내려야 한다. 뿌리가 없는 신앙은 위험할 수밖에 없으니 잘 넘어지기 때문이다. 열매맺는 신앙이 와야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축복을 받는 신앙이 되나 열매가 없으면 무서운 저주가 내려진 역사를 우리는 볼 수 있다(마 21:18-20, 눅 13:7). 성경공부는 신앙의 뿌리를 내리는 운동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