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단원 신약성경의 총론 제 9 과 신·구약 중간시대
2024년 12월 9일조회 5
제2단원 신약성경의 총론
제 9과 신구약 중간시대(마3:1-10)
제10과 신약 성경의 각 책들의 기원(딤후3:14-17)
제11과 신약 성경의 정경론(사34:16)
제12과 신약 성경의 사본론(시119:1-8)
제13과 신약 성경의 역본론(행2:1-13)
제14과 신약 성경의 영감론
제15과 신약 성경의 해석원리(벧후1:19-21)
제16과 말씀의 특공대가 되자(엡6:10-20)
제 9 과 신·구약 중간시대
성경본문 : 마태복음 3 : 1~10
외울말씀 :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 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리켜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3:7)
부를찬송 : 265장, 277장
구약시대가 막을 내리고 신약시대가 시작되기까지는 약 400년 간의 시간이 있었다. 느헤미야 선지자의 역사적 성전개축의 기록과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이 끝이 난 후위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제사장에게, 천사를 통하여 구주탄생을 듣기까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 없었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하는 새로운 메신저가 없이 정적이 흘렀던 기간을 중간기, 또는 중간시대라고 명명한다. 신약총론을 공부하면서 신구약 중간시대를 연구함은 신약성경을 배우는 데 큰 교훈이 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공부하고자 한다.
첫째 이스라엘의 정치적 발전상황
1. 페르샤에 속국된 시대(주전400-331년)..느헤미야 시대로부터 약 1세기동안은 페르샤 제국은 유대를 통치하였다. 이 기간은 비교적 평온한 시기였다. 페르샤(바사)정부는 유대인들에게 어느 정도 자치권을 주었으나, 대제사장이 되기 위한 경쟁과정에서 시기, 음모, 심지어 살인극마저 자행되었다(느12:22). 페르샤와 이집트는 이 기간동안 계속 분쟁하였고, 이 사이에 낀 유대는 큰 고통 속에 있었다. 아하스에로왕3세의 통치 기간 중에 많은 유대인들이 페르샤에 항거하고 반란에 가담하였다. 그들은 바빌로니아와 카스피 바다 연변으로 추방되었다.
2. 헬라에 속국된 시대(주전331-285년)..알렉산더 대왕은 페르샤 군대를 소아시아에서 격파시키고 시리아와 팔레스틴을 거쳐 이집트를 향하여 남진할 때 유대의 대제사장 앗두아가 알렉산더를 만나 다니엘의 예언(단8장)에 의해 그의 승리를 예언했다는 전설이 있다.
아무튼 알렉산더가 유대인들에게 친절하게 대한 것은 사실이다.
3. 애굽에 속국된 시대(주전285-204년)..알렉산더의 죽음(BC323)후 유대는 얼마동안 수리아 안티고누스에게 속했다가 애굽의 톨레미1세에 의해 주전320년 어느 안식일에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으나 유대인들에게 친절하였고 많은 유대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하게 되었다. 톨레미2세(필라델푸스, Philadelphys)는 유대인 율법학자 70명을 초청하여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케 하였는데 그것이 유명한 70인역(셉투아긴트, Septyagint,LXX)이다.
4. 수리아에 속국된 시대(주전204-168년)..수리아의 안티오커스 3세는 수리아와 팔레스틴을 애굽의 손으로부터 탈환하였다. 얼마 후 정치적 대제사장으로 야손이 2년간 제직하다가 므나헴이라는 폭도에게 제사장직을 빼앗겼다. 야손 일파는 므나헴패들과 싸울 때 안티오커스 4세(에피파네스)가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여 성전을 약탈하였고 많은 유대인들을 죽였다(170). 종교자유가 중지되었고 쥬피터 제단이 성전 안에 설치되었다. 성경의 사본들이 불태워졌고 유대인들에게 그들의 율법에 위배되는 돼지고기를 먹도록 강요되었다. 또한 유대인들을 모욕하는 뜻으로 암퇘지를 제단에서 제물로 바치기도 하였던 것이다.
5. 마카비 시대(주전167-63년)..마타디아스라고 하는 늙은 제사장이 그의 아들 다섯과 주동하여 왕의 사신들과 유대인 배교자까지 죽이고 유대 고원지대로 피신하여 「무력항쟁계획」을 수립하고 게릴라 전법으로 공격하였다. 그러나 마타디아스의 죽음으로 그의 셋째 아들 「마카비」(Maccabee)가 지휘권을 물려받았다. 주전 164년에 마카비는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그는 성전을 정화하였고 매일의 번제를 다시 시작하였다. 마카비가 승리한 직후에 안티오커스는 페르샤에서 죽었다. 그러나 그와 마카비 사이는 약 20년 동안 분쟁이 계속되었다. 아무튼 파란 많은 유대 나라에 자치적인 독립국가가 마카비왕가에 의해 약 100년 간 내려 왔으나 로마의 세력 구축을 위해 폼페이 장군에 의해 유대는 로마의 속국이 되고 만다.
6. 로마시대와 헤롯 왕조의 통치..예루살렘은 주전 63년에 품페이(Pom-pey)가 이끄는 군대에 의해 무력하게 함락되었다. 그후 로마에 의해 유대는 통치되었다. 율리우스가이사는 주전 47년에 안티파터(Antipater)를 유다의 지도자로 세웠다. 안티파터는 자기 아들 헤롯을 '유대왕'으로 세우기 위해 온갖 계략을 세워 목적을 이루었다. 헤롯은 주전 40년에 왕이 되었으며, 그는 왕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야만적인 행위와 음모를 일삼았다. 그는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베들레헴 근방의 유아들을 학살하라! 는 명령을 내린 장본인이다(마2:7-23). ☞ 눅 13 : 34
둘째 유대의 종파
1. 바리새파(초자연주의자)..초기 마카비시대에 헬라파주의자들과 싸웠던 경건한 유대인들의 정신적인 후손들이었다. 바리새(Pharisee)란 「분리자」란 뜻인데 그들의 원수들이 붙인 이름인 것 같다. 철저한 율법주의자들이었고 율법 외에 많은 법을 추가하여 지켰으나 예수님 당시 때에는 진리에 대한 충성심이 교만과 위선을 낳게 되었고 외식주의의 대표자라고 세례요한과 예수님으로부터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엄책을 들었다. 바울은 개종전에 이 파의 열심당원이었다(빌3:5)
2. 사두개파(자연주의자)..사두개란 말은 「의로운」이란 뜻의 「싸디킴」이란 말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그 기원은 솔로몬의 제사장인 사독(삼하8:17)이후라고 한다. 모세의 율법보다 후에 나온 모든 계시에 대하여 의심을 품었다. 부활의 교리를 부인하였고 천사와 악마의 존재를 믿지 않았다(행23:8). 그들은 주로 부유하고 지위도 높은 사람들이었고 그 시대의 헬레니즘과 기꺼이 영합하였다. 신약시대에는 그들은 제사장직과 성전의 제사 의식을 관장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회당은 바리새파의 근거지였다.
3. 엣센파(금욕주의자)..역사가 요세프스에 의해 주어진 자료에 따르면 4,000명으로 추산되는 엣센파가 사해 서쪽 지역에 거주하며 공동체의 생활을 하였다고 한다. 즉 수도원과 비슷한 생활이다. 그들은 단순하고 절제있는 규칙생활을 하였다. 결혼도 금지했으며, 종파에 입단하면 3년의 수도생활을 하는 등, 많은 금기 금욕생활을 하였다. 재산을 공동화 시켰으며, 씻음(의식적), 세례, 정해진 시간의 기도, 영혼불멸의 교리를 가르쳤다. 그리고 메시야의 탄생을 기다리며 지냈던 종파였다. 세례요한이 이 파에 입단했던 자가 아닌가 하는 학자도 있다.
4. 서기관..엄격하게 말한다면 서기관들은 종파라기보다 차라리 전문직의 회원들이다. 그들은 처음에 율법을 베끼는 일을 하였으나 차츰 성경에 관한 권위자로 간주되게 되었고 이윽고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들의 사상은 일반적으로 바리새인들의 사상과 유사했는데 신약 성경에서는 흔히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한 무리가 되어 나온다.
5. 정치적 파당/열심당과 헤롯당..열심당은 로마에 대항하는 폭력테러 집단이다. 창시자는 갈릴리 사람 유다가 창설했다(행5:37절 참조). 헤롯당은 헤롯의 정치제도를 지지하는 유대의 반역자 무리들로 표현된다. 복음서에 보면 헤롯당은 갈릴리에서 (막3:6),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적으로(마22:16,막12:13절 참조) 언급되었다.
☞ 마 3 : 4
셋째 유대의 공공기관
예루살렘 성전과 공회, 회당은 유대인들의 생활을 크게 지도하고 있었다.
1. 성전..주전1000년경에 솔로몬이 건축한 (왕상6ㅣ1) 성전은 주전586년경 유대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 파괴되었다. 그후 느헤미야, 에스라시대 때 개축하였으나(스6:2-5), 예루살렘 함락 때(주전63년)파괴된 성전을 헤롯이 예루살렘 거민의 환심을 사기 위해 웅대한 규모로 재건하였었다.
2. 공회(sanhedrin-산헤드린)..공회는 70명으로 구성된 유대인의 최고 법정이다. 구성요원은 귀족과 제사장들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따라서 거의 사두개파 사람들이었다.
3. 회당..유대교의 형성과 발전에 영향을 끼친 공동체의 회합장소이다. 유대인들은 세계 도처에 분산되어 살았는데 이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건립하여 율법 교육장소로 사용하였는데, 사도시대 때 선교사들에게 복음증거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 요 2 : 19-20
맺는말
구약과 신약의 중간 역사에서 이스라엘의 정치적 발전 상황과 유대의 종파 그리고 유대의 공공기관을 연구하여 보았다. 이는 우리가 신약 성경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공부라 하겠다. 바벨론 70년 포로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의 정치적 상황은 메시야의 초점을 더 갈망하게 하였고, 유대의 종파와 공공기관은 복음서에 많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