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송영남 목사"강의"삼상2:3~10 「행동을 달아보신 하나님」
2025년 11월 28일조회 8
삼상2:3~10 「행동을 달아보신 하나님」
본문 이전에 배경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사사시대의 암울함 속에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혼란한 시대였고, 당시 엘리 제사장 때의 일입니다. 엘가나에게는 한나와 브닌나라는 두 아내가 있었는데 브닌나에겐 자녀가 있었고,
한나에게 자녀가 없어 매우 큰 수치와 깊은 고통과 슬픔에 잠겨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하나님께 마음아퍼 더 크게 기도하여 결국 한나는 슬픔속에서 서원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 사무엘을 서원하며 얻은 후, 그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린 찬양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응답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넘어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온전히 노래하고 있기도 하지만, 한나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능력을 의심하지 않고 깊은 고통 중의 부르짖음에 응답해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째: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3下).
호세아 4:6절“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 도다!”하였습니다. 돈이 없어서 망하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없어서 망하는 것도 아니고, 권세가 없어서 망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되 더 많이 알기를 힘써야 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길을 인도하고, 인생의 어려운 문제를 앞에서 해결책을 제시해주며, 그 말씀이 우리를 설득하여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지식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각, 마음의 동기, 감정,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까지도 모두 통찰하고 계십니다.
둘째: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3下).
이 구절에서 ‘달아보신다’는 표현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내는 행동의 무게를 재는 것을 넘어섭니다, 성경에서‘달아본다’는 의미는 우리의 말과 행동의 ‘질’과 ‘가치’, ‘동기’까지도 판단하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시139:1~3)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마음으로, 이떤 동기로 행동했는지를 보신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좋은 일을 했더라도 그 중심에 진실함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쁘게 받지 않으실 수 있다는 것이죠 반대로,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행동이라도 진실한 믿음과 사랑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것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달아본다, 세어본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과 관계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십니다.
믿음을 달아 보시고, 사랑도 달아보시고, 열심도 달아 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의 양도 달아 보시고, 충성도 달아보십니다.
중심을 보신 하나님은 항상 속, 중심을 달아보십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이 달아 보셔서 함량 미달이 된다면 이것처럼 큰 비극과 불행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인생들의 행동을 달아 보십니다.
-우리가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고,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는, 우리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도 환히 꿰뚫어 보고 계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마트의 계산대에 저울이 물건의 무게를 달 듯,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정확하게 달아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달아보시는 저울의 추는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행동의 크기보다, 그 행동을 하게 만든 우리의 마음과 동기가 얼마나 순수하고 정직한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과 기도의 분량이 채워지며 복과 응답을 내려 주신다고도 하셨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늘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마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길 원하십니다.
셋째: 생사화복을 주관하신 하나님(6~7).
살리는 것과 죽이는 것, 다시 말해서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절대권한이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인 존재이며, 절대적인 능력의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하나님! 7절의 말씀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Ab에게 복을 주셨던 하나님! 이삭이 가는 곳곳마다 100배의 복을 주셨고, 야곱에게 복을 주신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의 백성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하나님은 이미 어떤 이유나 문제 때문에 낮아져 있는 사람이라도 주님이 마음만 정하시면 높이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이 어떠한 사람이였나요? 들판에서 양치기 사람이였는데 그를 높이 들어 이스라엘 통치자로 세우셨고, 애굽의 종으로 팔려간 요셉을 애굽 큰 나라의 국무총리로 세우셨습니다. 하시고자하면 인생을 역전시키는 하나님이십니다. 할렐루야!
넷째: 심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10절).
한나의 고백은 심판도 여호와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10절)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대적하고 교회를 대적하고 잘 된 사람은 없습니다.
- 느브갓네살 왕에게 큰 은혜를 베푸셔서 그의 권세가 땅끝까지 미치게 해 주셨는데 말입니다. 그의 마음이 높아지며 뜻이 완악하여 교만을 행하므로 하나님이 그를 가차 없이 치셨음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심판에 대비하여 준비해야 합니다. 못된 행실 다 버리고 악한 생각을 다 버리고 물가지고 씻든지 불가지고 태우든지 예수님의 피로 우리안에 있는 모든 죄를 멸해야 합니다. 우리를 달아보셔서 선행이 모자라고 죄악이 관영하며 심판을 하사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나올 수도 없는 비참한 고통과 지옥의 형벌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행동을 달아보신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더욱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하게 살아야 합니다. 겉모습이 아닌,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나가 고난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마음과 기도의 분량을 달아보시고 응답하셨습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과 기도의 분량이 차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축복과 응답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묵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매 순간 하나님을 의식하며, 말과 행동 하나하나를 신중하게 선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주님 앞에서 올바른 태도를 가지고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귀하게 사용해주실 것입니다.
첫째: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지식의 하나님.
둘째: 우리의 행동을 달아보시는 분.
셋째: 생사화복을 주관하신 하나님
넷째: 심판은 여호와께 있습니다.
결론: 사사시대의 암울함에서 민족을 구원하실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백성을 대적하는 이들은 이들을 산산이 깨뜨리고... 심판을 내리시며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부음 받은 자의 뿔(능력. 영광)을 높이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제한과 한계가 없습니다.
한나는 그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슬픔과 고통, 절망의 끝에서 기쁨과 소망으로 회복을 경험했으며, 노래할 수 있는 한나의 확고한 믿음, 영성, 지성이 얼마나 귀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고 우리의 진실된 중심을 보시며 선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행동을 달아보신하나님”앞에서 늘 정직하고 신실한 삶을 살아가셔서,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큰 축복을 경험하시는 모든 분들이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독교 기본교리 예수님(2)
귀머거리가 들음(막7:31~37) 지난번 증거2 이어서
죽은 자가 살아남(마9:18; 19:23~25; 눅7;11~15; 요11:1~44)
복음이 전파됨(마11:5)
증거3 : 그의 부활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예언하셨을 뿐 아니라, 정확한 기간까지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2:19)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도안 땅속에 있으리라”(마12:40)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서 그들에게 가르치시되”(막8:31)
그는 자신이 부활할 수 있는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요10:17, 18)
예수님은 사람이시다
예수님께서 사람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인간으로 탄생하셨다(사7:14~16; 마1:23; 갈4:4).
-동정녀에게 나심
2. 그는 인간으로서 성장하셨다(눅2:52).
예수님이 인간으로 성장하신 네 가지 면을 보자.
*지적으로
*신체적으로
*영적으로
*사회적으로
3. 그는 인간의 감정을 경험하셨다.
예수님은 이런 감정들을 느끼셨다.
*애통(요11:35)
*슬픔(마26:38)
*기이히 여김(마8:10)
*사랑(불신자에 대한 사랑: 막10:21, 친구에 대한 사랑:요11:5, 제자들에 대한 사랑: 요13:1, 모친에 대한 사랑: 요19:26, 27)
*이상히 여김(막6:6)
*고민(막14:33)
*긍휼(막1:41)
*분노(막3:5)
4. 그는 인간으로서의 경험과 욕구를 가지셨다.
*그는 피곤하셨다(요4:6; 막4:38).
*그는 주리셨다(마4:2).
*그는 목마르셨다(요19:28).
*그는 고뇌하셨다(눅22:44).
*그는 유혹을 받으셨다(마4:1~11).
*그는 돌아가셨다(눅23:46).
☛ 짚고 넘어갑시다
성육신
「‘성육신’이라는 말은 라틴어로 ‘육신을 입은’이라는 뜻을 가진 단어에서 기원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탄생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으로 성육신하신 것이었다. 하나님은 인간의 육체를 입고 우리에게 오셨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자 완전한 사람이시다
A.D. 451년 예수님의 본질에 대한 당시의 거짓 가르침에 대응하기 위해 칼케돈 공의회가 소집되었다.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시고 완전한 사람이시라는 진리를 재확인한 유명한 ‘칼케돈 신조’를 살펴보자.
예수님은 “혼란, 변화, 분열, 분리 없이 공존하는 두 본질로 존재하며, 각 본질의 특성이 한 위격 안에 담겨 있고 공존한다.”
이 어려운 문장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
*예수님은 100%의 시간 동안 100% 하나님이시고 100% 사람이시다
(수학적으로는 비논리적이지만, 신학적으로는 완전하다).
*예수님은 사람 안에 내주하는 하나님이 아니셨다. 그는 하나님이 된 사람도 아니셨다. 그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난 하나님이 아니셨다. 그의 한 인격 속에는 두 본질이 공존했다. 그는 완전한 하나님이셨고,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셨다.
*예수님에게는 완전한 인성과 전지전능한 신성이 공존했다.
☛ 짚고 넘어갑시다
위격적 연합
「온전한 신성과 완전한 한 위격 안에 연합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과거에 하나님과 인간이 되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하나님과 인간이실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이셨다(요1:2).
예수님은 계속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셨다(요1:14).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으로 계속 존재하실 것이다.(행1:9~11).
예수님은 자신의 능력을 육체 속에 감추고 완전한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온전한 능력을 소유하심으로써 여전히 완전한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을 제한하셨다.
*사람의 형체를 가지심으로(빌2:6~8)
*한 번에 한 장소로 자신의 임재를 제한하심으로(요14:28)
*아버지의“더 크신”권위를 인정하심으로(요14:28)
*지식을 제한하심으로(마24:36)
예수님께서 자신을 제한하셨으나 여전히 하나님이시라는 개념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보다 훨씬 더 위대하심으로 그분에 대한 진리 중에는 우리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기억해야 할 때이다.
인간이신 예수님의 능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상에 계실 때도 그는 여전히 완전한 하나님이셨다.
*사람으로 태어나고, 이 땅 위를 걷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것은 삼위일체이신 그분 자신이 결정하신 과정이었다.
지상에 계시는 동안에도 그는 스스로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셨다. 사탄이 유혹했을 때 그분은 돌들을 떡으로 바꾸실 수도 있었다(눅4:3). 십자가에서 1만 명의 천사들을 불러 그를 구하게 하실 수도 있었다(마26:53). 그러나 그분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 기억합시다
빌2:5~11절은 사람이 되겠다고 결정하신 예수님 스스로의 의지에 대해 말씀하는 가장 감동적인 한 부분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라고 말씀한 것에 주목하라. 바울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사람이 되기로 하신 예수님의 의지에서 어떤 태도가 드러나는가?
3, 4절에 예수님의 성품을 담은 구체적 내용들이 등장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으로 하지 말라.
*아무 일에든지 허영으로 하지 말라.
*자기보다 맘을 낫게 여기라.
*자신만 생각하지 말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돌아보라.
이러한 주님의 성품은 겸손이다.
완전한 사람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이해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완전한 하나님으로서, 예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다.
- 다음엔 성령에 대해 강의하게 됨





